인류가 만든 최초의 태블릿

동대신문l승인2021.11.01 14:4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최영미 시인

  이미출판 대표

젊은이들이 많이 일하는 서울의 어느 동네에서 저녁시간에 버스를 탔다. 퇴근시간이라 좌석은 만원,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서 흔들리며 내 시선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글을 쓰는 게 직업인 나는 공공 공간에서 사람 구경하기를 즐긴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퇴근 버스에서 뭘 할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명이라도 발견하기를 내심 바라면서 앞뒤 좌석을 훑었다. 죄다 이십대 삼십대의 청년들이, 죄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자신만의 게임에 빠져있다.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게임 삼매경에 빠져 열심히 손을 놀리는 이들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낮 시간에 열심히 일했으니 저녁엔 좀 쉬어야하지 않나? 나라면 편안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할 텐데. 아니야, 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 권리가 있어. 기성세대, 이미 노년에 접어든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고대 수메르인들이 만든 최초의 태블릿인 점토판에서 21세기의 똑똑한 휴대전화까지, 문명의 진화를 이끈 것은 기록에 대한 욕구, 소통에의 열망이었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다시 혼자가 되려 한다. 고독한 게임에 빠져 서로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길 가다 길을 물어보면 수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요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고 입은 마스크로 막고, 눈은 어딜 보시나? 횡단보도에서는 물론 길을 건너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니, 길을 묻거나 말을 붙여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혼자만의 게임에 빠진 젊은이들을 보며 ‘쓰는 인류’를 생각했다.

“5천년 전에 그들은
나무의 생김새를 흉내내어 나무를,
사람 모양으로 사람을,
손을 그려 손을 표시했던 수메르인들은
쓰기를 시도했던 최초의 인류

눈은 손이 될 수 없고
사랑은 미움으로 변할 수 없었고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펜으로
진흙 위에 일용할 양식을 
소중한 것들을 기록했다
한번 새긴 글은 지우지 않았고
진흙판을 깨지 않고는 한 글자도 지울 수 없었다

위선의 종이 뒤에 숨어
내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빛의 속도로 분노와 적의를 실어나르는 우리는
누구를 가슴속에서 완전히 지우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술을 아는 우리는” 
-최영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서 ‘쓰는 인류’ (부분)

2015년 봄. 누군가 내게 길가메시 서사시를 소개했고, 오래된 이야기에 푹 빠져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새겨진 고대의 점토판에 매료되어 실물을 보러 영국으로 날아갔다. 대영박물관의 어두운 전시실. 유리 문 안에 모셔진 흙판, 돌 위에 빼곡하게 새겨진 설형문자들이 너무 작아 나는 놀랐다. 도저히 형태도 구분하기 힘든, 내 눈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글자들을 보며 처음 든 생각. 
이렇게 작은 글자를 쓰고 읽었다니. 
옛날 사람들은 눈이 아주 좋았나보다. 
시력을 해치는 텔레비젼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니, 띄엄띄엄 떨어져 살며 시야를 가로막는 빌딩이 있나. 가까운 곳도 먼 곳도 잘 보았을 게다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가의 진흙을 채취해 손바닥으로 태블릿을 만들고, 나무줄기를 잘라 만든 도구로 정성스레 한 획 한 획 의미를 새겼던 고대인들. 그들에게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망각과 싸우기 위해, 누군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 사원을 건축하는데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맥주와 빵의 수량을 적은 (일종의 회계장부) 점토판이 인류가 만든 최초의 태블릿이었다.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문자는 경제생활의 필요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회계장부에서 문자가 탄생했고, 문학이 나왔다니. 숫자들에 약하고 계산에 어두웠던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하찮은 두근거림과 눈부심과 쓰라림, 사노라면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풀어놓으려 문자를 발명한 게 아니었다!    

고대의 태블릿 위에 새겨진 의미덩어리는 수천 년을 살아남아 발굴되었다. 수메르인이 만든 점토판은 당대 최고의 첨단기술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책을 갖고 있지만, 문명의 초기에 글자판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는 고단한 노동이었고,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그처럼 귀했던 태블릿을 (책을, 스마트폰을) 오늘날 우리는 쉽게 소유하고 쉽게 소비한다. 너무 쉽게 쓰고 버린다. 너무 쉽게 지우고 베끼고 오려 붙인다. 

혼자만의 게임은 위험하다. 내가 보고 싶은 뉴스, 알고 싶은 정보만 검색하며 살다보면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감을 잃을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언어로 두루 소통하고자 했던 고대인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신문사소개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8066 경상북도 경주시 동대로 123 (석장동,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  대표전화 : 054)770-2057~8  |  팩스 : 054)770-205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민영
Copyright © 2022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