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무엇이고, 학생은 무엇을 하는가?

동대신문l승인2022.11.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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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현배 (사단법인 한국공공언어연구협회 대표)

“공부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다양한 답이 있다.  배우고 익힘, 지혜로워짐, 취업의 도구, 깨달음의 순간 등이 있는가 하면, ‘무지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공부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것이나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참된 공부라 강조하기도 한다. 때로는 매일 새로워지는 것이 공부라고도 한다.

 

우리의 주식이 쌀에서 밀로 바뀌었다. 옷도 한복이 주류가 아닌지 오래되었다. 한 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도 그 가치에는 수명이 있다. 세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가치도 달라지게 된다. 우리 근대 정치사에 반공, 즉 공산주의에 반대함 또는 멸공, 공산주의를 멸망시킴이 나라의 핵심가치로 공유되던 시절이 있었다.

 

주류 이데올로기가 반공이던 시절에는 ‘빨갱이’가 제일 무서운 존재였다. 내가 빨갱이로부터 피해를 보는 것도 피해야 했지만, 자칫 내가 빨갱이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도 함께 있었다. 중세 마녀사냥도 그런 속성을 공유한다. 이 시기는 어쨌든 나와 남을 구분하고, 반대편은 기필코 ‘소멸’ 시켜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런 시기는 ‘국가’의 가치가 큰 힘을 가졌다. 국익을 위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였고 개인의 성취보다 우선시 되었다. 이 때는 학교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인재’를 키우는 것이 목표였다. 개인의 능력은 국가를 위해 기여할 때 더 큰 가치가 있었다. 개성이나 취향의 존중은 언제나 국가나 집단의 다음 순서였다. 

 

교육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고, 학교는 교육을 통해서 인적 자원의 가치를 높여 주는 곳이었다. 인적 자원이라는 것은 지하자원이나 수산자원 등과 같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원’으로서 핵심이었다. 농지도 좁고 다모작도 안되니 농사에 불리했고, 산유국처럼 지하자원에서도 불리한 우리는 인적 자원에 국가의 운명을 걸었다.

 

지식을 배우는 것, 그래서 매뉴얼에 따라서 기계를 다루고 물건을 나르고 판매를 하는 메커니즘을 익히는 것은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그 덕택에 산업 현장 곳곳에서 숙련된 인력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제역할을 다하며 국가 발전, 경제 발전에 기여하면서 국력을 키웠고, 마침내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세상은 바뀌고, 매뉴얼을 따라 무한 반복하는 것은 기계가 더 잘 하게 됐고 그것은 로봇으로 진화를 거쳐 이제 AI의 시대가 되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었던 시기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슬로건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에 공감함은 무슨 의미인가?

 

교과서를 열심히 외우는 것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정보를 남보다 늦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네이버에게 묻거나 구글링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것들 중 극히 ‘일부’를  내가 외우는 것이 어떤 경쟁력이 될까? 더구나 지식의 수명도 점점 짧아지고 있어서, 겨우 기억하고 있는 그것이 곧 쓸모 없는 지식이 될 것인데.

 

그렇다면, 저녁이 있는 삶의 시대에 공부는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행동하기에 앞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20대에게 ‘공부’는 무엇이며, 어떤 공부가 참된 공부, 나를 살찌우며 나를 춤추게할 공부인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학생’은 그것에 답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답을 찾고 있어야 마땅하다.

 

‘며느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들을 낳아서 집안의 대를 잇는 것’에 전 국민이 공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 이야기는 있어도 출산율이 전세계 꼴지라도 여자를 애 낳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가치가 달라졌고, 시민의 의식도 높아졌다.

 

음식을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으로만 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칼로리’를 섭취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누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배’를 채우기 위해서 앉아 있는가. 연인과 외식을 하면서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는 청춘들이 오직  ‘배가 고파서’ 거기에 있지 않음은 너무나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교수는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은 그것을 받아서 외우는 수업이 오늘의 교실 풍경이라면, 그것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식사 과정은 칼로리 섭취 뿐만 아니라 맛을 즐기고 향을 누리며 함께 하는 사람과 교감을 하며 행복을 맛보는 시간이다. 짠맛 단맛 뿐만 아니라 사랑도 행복도 느낀다.

 

오늘날 민주 국가의 시민은 국가의 가치에 종속된 개인이 아니다. 그는 그 자체로 ‘존엄’하며, 그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과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그를 위한 교육은 국가의 부속품을 양산하던 시기의 그것과 달라져야 한다. 국가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목장이나 농장 경영과 다르지 않다. ‘사람’ 교육은 A++ 등급 ‘한우’를 키워내는 것과 같을 수 없다.

 

지현배 (사단법인 한국공공언어연구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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