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책방: 지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대신문l승인2022.06.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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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책방 대표 김미현

지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방에서 산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이 질문을 몸과 마음으로 학습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은 공연, 영화, 전시를 보기 위해 서울이나 적어도 광역시로 가는 일은 사소한 일이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는 당연히 이런 문화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수시로 학습한다는 점에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내가 운영하는 책방은 인문학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함께 취급하는 작은 서점이다. 좋아하고 잘 아는 분야의 도서로 서점을 꾸리고 싶어서 이렇게 정했지만 8년 전 책방을 처음 열 때는 독립출판 ‘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립출판물을 팔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 ‘씬’이란 당연히 서울을 말했고, 주류가 있는 곳이자 비주류의 주류까지 있는 곳이다. 주류가 되든 비주류 되든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 입장해야 하는 ‘씬’은 늘 지방이 아니라 서울에 있었다. 서울로 표상될 뿐이지 자본과 사람이 모여드는 어느 대도시든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포항처럼 소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광역시인 대구나 부산도 그런 의미에서 조금 작은 서울이라고 해야 할까.

영어 단어 ‘scene’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극장의 텐트나 무대를 나타내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극장이나 영화, 소설 등에서 무대, 장면, 배경을 뜻하는데 그 말은 이야기가 벌어지는 장소라는 뜻이다. 이야기는 우리를 무대에 오르게 한다. 우리를 객석에서 지켜보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닌 무대에서 이야기를 쓰는 주체로 일으킨다. 그러나 모두가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장소가 씬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혹은 반대로 모두가 이야기를 쓸 수 있고 모두가 무대에 오를 수 있지만 그 무대를 찾아야만, 혹은 무대로 가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책방을 열며 어떤 의미에서 씬을 직접 만들었지만 진짜 씬은 서울에 있고, 그 씬을 아는 진짜 관객도 서울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씬이라는 단어가 존재함으로 인해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인식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방령’이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지박령’이라는 단어를 조금 비튼 이 이름은 ‘지방여성이 쓰는 일의 연대기’라는 포부를 가지고 지방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나와 지방에서 독립 매거진을 만드는 동료와 함께 만들고 있다. 우리는 책방에서 사장과 손님으로 만났고 동료가 되었다. 포항에서 태어나 서울에 갔다가 다시 포항으로 돌아온 나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일하다가 결혼 후 포항에서 살게 된 동료가 지방에서 산다는 것, 지방에서 여성으로 살며 일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유튜브를 봐도 찾을 수 없었던 어떤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당사자에게는 절실하지만 주류의 삶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 어떤 이야기이다. 기차를 타고 대도시로 가서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지만, 어떤 무대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기차를 타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낯선 도시의 극장을 찾아간 당신의 열정과 적극성은 왜 객석에서 멈춰야 할까. 그곳은 나의 씬이 아니라서? 어쩌면 scene이라는 단어의 존재가 무의식 중에 나를 주저앉힌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포항에는 팟캐스트 씬도 독립출판 씬도 독립 매거진 씬도 없지만 어떤 씬은 우리가 알맞은 무대 찾기를 포기한 그 순간, 조금 더 정확히는 무대의 유무를 신경 쓰지 않는 그 순간 탄생하기도 한다.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는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그 책은 당연히 지방에서도 쓸 수 있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곳이 씬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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