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첫눈

동대신문l승인2021.11.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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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

  이미출판 대표

이맘때면 첫눈이 와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11월이 다 가고 있는데 어제 오후는 살짝 덥게 느껴질 정도도 날씨가 따뜻했다. 올해 초부터 어느 일간지에 매주 “최영미의 어떤 시”라는 제목으로 세계의 명시를 소개하고 짧은 해설을 다는 글을 쓰게 되면서 나는 부쩍 날씨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온갖 꽃이 피어나는 5월에 첫눈에 관한 시를 신문독자들에게 소개할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젊다면 그런 몰상식한 일을 해도 용서가 될 텐데, 나이 들어 나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

 

작년에 시집 <돼지들에게>의 개정증보판을 내고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 오지도 않은 어떤 언론사 기자가 허위기사를 내보내 크게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로 상처받은 어떤 남자가 나를 비난하며 ‘최영미는 언론의 생리를 모를 정도로 어리지 않다.’는 요지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내게 보낸 적이 있다. 아주 길고 논지가 헷갈리는 아리송한 글이었다. 정확히 뭘 주장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의로 가득한 그의 메시지를 읽고 나는 그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래 작가 경력 이십년이 넘는데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어. 그런데 정말 왜 나는 아직도 언론의 생리를 모르고 사고를 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1) 내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2) 철이 들기는 들었는데, 책을 자주 출간하지 않으니까 대한민국 언론의 속성을 깜빡 잊어버리고 실수를 하는 거다. 매년 신간을 시장에 내놓아 매년 출판 담당이나 문학 기자들을 상대했으면 해마다 환기되어 잊을 염려가 없는데, 사오 년에 한번 시집을 내니 나도 그들을 잊고, 그들도 나를 잊게 된다.

 

젊을 적에 나는 제 멋대로여서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았다. 온몸을 태울 듯 폭염이 한창인데 겨울에 관한 글을 신문 잡지에 발표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는 건 젊음의 특권이다. 젊을 적에는 당신이 조금 오만하고 몰상식하더라도 사람들이 용서해준다. 얘가 뭘 몰라 그러는 거야,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그래……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사랑하면 이해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이해 못할 사람도 없다.

 

날씨에 대한 이야기, 기후변화의 위험을 말하려 했는데 이야기가 딴 데로 샜다. 봄이 시작되는 3월이면 3월에 어울리는 시를, 여름에는 여름에 어울리는 시를 고르는 게 한 주일에 나의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인데, 계절에 어울리는 시를 소개하는 게 쉽지 않다.

 

10월에 어울리는 시를 고르다 “쓸쓸하게 가지를 떠나는 낙엽”을 노래한 구로다 사부로의 시 ‘어느 날 어느 때’를 신문에 기고했는데, 그 글을 쓴 9월말은 물론 글이 신문에 실린 10월 4일까지 (더운 날씨가 계속되어) 나는 낙엽을 한 잎도 보지 못했다! 이런 추세라면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것 같다. 6, 7, 8월만 아니라 9월도 여름에 포함시켜야 옳다. 펑펑 쏟아지지 않아도 좋으니 하얀 눈을 어서 구경하고 싶다. ‘너무 늦은 첫눈’이라는 제목의 자작시를 지면에 널리 소개하고 싶은데, 눈이 오지 않네요. 겨울아, 제발 제 때에 오너라. 첫눈 기다리다 내 목 빠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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