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의 사회적 자본

동대신문l승인2021.11.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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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엽 사진작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팬데믹이 만2년을 통과하고 있다. 이런 지구적인 재난은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이후 처음이니 지금 인류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한 셈이다. 마스크로 쓰고 다녀야 한다거나 거리를 둬야 한다는 초기의 대응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유럽은 완전 봉쇄를 감행해 거리에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했고 사람들은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집에서 죽어야 했다.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상태였으니 지구에서 안전한 곳은 없었다. 이런 일은 과거 역사책에서 흑사병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재앙의 재림이었다.

팬데믹으로 인류는 공포로 인해 문화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완전히 홀로되는 전략이었다. 일은 집에서 혼자 하고, 밥도 혼자 먹고, 놀이도 혼자 했다. 갑자기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대세가 되어 ZOOM은 일상을 파고 들었다. 혼밥에 혼술은 식당의 대세가 되고, 땀 흘리고 소리치는 놀이는 안되는 조용히 집에서 모니터와 TV로 OTT에 접속했다. 수 만 년 동안 지켜오던 호모사피엔스의 문화가 단 2년 만에 급격히 변화하는 현장을 우린 함께 목격하고 있었다.

위드 코로나로 인해 잠시 방역이 풀어지자 일상으로 돌아가는 행보 속에서 거꾸로 개인 시간 늘어나서 좋았는데 조직 생활 골치 아프다는 푸념이 나왔다. 그런데 과연 방역 속의 개인 존재가 자유를 얻은 것일까? 아니면 홀로 있는 시간이 유의미한 가치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일까? 우린 여기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음미해 볼 만하다.

 

100년에 찾아 온 팬데믹

지금으로부터 30만 년 전 우린 아프리카의 해변가에 점점이 모여 사는 별 것 아닌 포유류 종족이었다.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에는 데니소바인이 있었다. 어느 순간 동물을 쫓아 아프리카 밖으로 나온 인류는 새로운 종족들을 만났고 투쟁하고 사랑했다. 현재 우리 DNA 안에는 약 5~7% 정도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하지만 이 때도 인간은 구석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주 작은 집단의 수준에서 떠돌아 다녔다. 그랬던 우리는 약 5~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시절부터 매우 똑똑해진다. 추위는 집단을 크게 이룰수록 사냥 등을 통해 생존이 용이했고, 모여 있을수록 지식의 수용과 전수가 수월했다. 인간은 이제 자연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그저 추상적인 설명이 아니라 매우 과학적인 결론이다. 인간은 혼자 또는 작은 집단으론 결코 스마트폰도 오징어 게임도 만들어낼 수 없다. 집단적 작업과 분업을 통해 현재의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대인관계와 공유된 정체성, 규범, 이해, 가치와 더불어 신뢰, 협력,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 집단에 효과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은 유형적인 자본(공공 공간, 사유재산 등)과 무형적인 자본(사람, 인적 자본 등), 그리고 그 관계들이 자원과 더 큰 집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우린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자본을 잃었다. 당연하게도 지구적 차원에서 생산량을 줄었지만 일부 부유한 나라들의 생산은 늘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일부 부자들이 그 이익을 가져갔다. 예를 들면 테슬라와 애플 등이다. 당연하게 한국도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의 수입은 줄었는데 수출이 급격히 늘어 재벌들은 큰 수익을 남겼다. 양극화의 극단을 보여 준 것이다. 양극화는 결국 유무형의 자본을 잠식하고 장기적으로 공동체에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 요즘 플랫폼 노동으로 늘어나는 청년들의 산재와 자살 폭증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사회적 자본을 잃었다

물론 지난 2년 동안 부정적인 현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린 전에 강제로 해 볼 수 없는 것을 해봤다. 그것이 첫 번째는 기후변화를 몸으로 실감한 것이다. 에너지 소비가 급감하자 기후 변화를 목격한 것이다. 파란 하늘을 본다던지 맑은 하천을 본 것이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지시했다. 두 번째는 강제적인 방역으로 인해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 것이다. 집단을 위해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의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할지 질문한 것이다. 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더이상 글로벌 자본의 전횡을 감내하기에 노동자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자리 보장도 사회 복지도 없다면 꼼짝없이 굶어 죽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이다. 이런 교훈 속에서 과연 우리는 2022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아직 우리 인류는 발전할 여지가 있으니 사회적 자본을 계속 축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소양강변을 걷는 마스크한 사람들. 야외에서도 이젠 조심스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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