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남긴 흔적, 남겨야 할 흔적

동대신문l승인2021.03.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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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정우 정신과 전문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COVID-19)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전방위적이다. 감염에 대한 공포는 분노로 이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생활 양식의 변화, 경기 침체 등의 상황과 맞물려 무기력과 우울감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만나지도, 활동을 하지도, 희망을 가지기도 어려우니 이 불편한 감정을 적절히 다스릴 방법이 없다. 이에 따른 우울감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모두’ 불안하고 두렵고 무기력한 상태다. 당연할 수는 있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으며 고통을 수반하기에 방치할 수는 없는 그런 상태다.

이 당황스러운 변화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조현병(schizophrenia) 환자들은 발병 초기에는 망상, 환청을 특징으로 하는 양성 증상(positive symptom)이 우세하지만, 병의 경과가 진행될수록 의욕의 저하, 무기력, 무감동을 특징으로 하는 음성 증상(negative sympom)이 임상의 초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조현병 환자들은 대사질환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약물 치료에 더해 규칙적인 야외활동과 운동,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의 프로그램 참여를 권하는 상담은 치료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 이 분들에게 외출을 권해야 하는가, 그냥 댁에 계시라고 해야 하는가.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증상이 회복되어 우울의 터널에서 나와 다시 일상 생활로 복귀하려는 용기를 내는 분들을 다시 주저 앉도록 뒤에서 잡아채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다. 환자도 허탈하고 의사도 허탈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기로 침투하지만 이 바이러스로 인한 현상은 우리의 감정 곳곳에 스민다. 이 감정 상태를 우리는 흔히 코로나 블루라고 부른다. 이 감정은 슬픈 기분, 흥미의 저하, 무기력, 무망감 등 우울증과도 닮아 있고 불안이나 공포, 긴장 등 불안 장애와도 닮아있다. 또한 심리 사회적 스트레스로 유발된 부적응적 변화라는 점에서 적응 장애의 특징을 공유하기도 하며 혐오와 낙인과 같은 투사의 방어기제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증상은 개인이 경험하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가 경험한다는 점에서 집단적이다. 집단 발병과 전염은 감염병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 블루를 이해하려면 공포, 불안, 혐오에서 보이는 집단적 성격과 이를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개개인의 우울감과 무기력을 두루 살펴야 한다. 공포와 불안의 반대말은 침착함과 평정심이다. 혐오의 반대는 인정일 것이다. 집단 차원의 침착한 인정, 우리는 이를 연대라고 부른다. 인정은 타인에 대한 인정임과 동시에 현 상황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걱정도 하지만 이 와중에 연애도 하고 직장 상사 욕도 하며 옆집의 부부 싸움 역시 오늘도 지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달라진 상태에서 삶을 살아내는 것, 변화를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 이 상황에서 다소 어색하지만 새로운 행동 양식을 받아들이는 것, 이는 뉴 노멀(새로운 정상 상태)이라는 이름의 적응이다.

“Keep calm and carry on”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그저 묵묵히 현실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영국 국민들이 평정심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묵묵함보다는 환기(ventilation)가 뉴 노멀이 되어야 하는 시대다. 막연한 공포는 실체가 없어 더 크게 느껴지지만 대화와 환기를 통해 인정과 확인을 거치면 그 실체가 명확히 보인다. 너와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면 혐오 대신 공감이 자리할 틈이 생긴다. 개인이 겪고 있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당연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불편한 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2020년대의 뉴 노멀이다. 다행히도 당신과 꼭 닮은 경험을 한 몇몇은,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은 당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모든 변화는 흔적을 남긴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지만 치유의 흔적 또한 남을 것이다. 그 흔적이 대화, 연대, 인정, 공감이라는 뉴 노멀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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