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

영화 '증인' 윤예진 기자l승인2020.12.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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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증인'(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증인’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의사소통이 어려운 자폐아의 이야기를 다룬 정우성과 김향기 주연의 드라마 영화다. 자폐증이 있는 여중생 지우(김향기 분)가 우연히 이웃집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런 지우의 목격담에 신빙성을 갖느냐 마느냐가 주된 핵심으로 이어진다.

양순호(정우성 분)는 민변 출신이지만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영리한 변호사다. 그는 대표의 권유로 살인 사건 용의자의 국선변호사로 선임이 된다. 이를 출세의 기회로 삼으려 한 양순호는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이면서 자폐를 앓고 있는 지우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려 노력한다.

“목격자가 있어. 자폐아야” 신념은 잠시 접어 두고 현실을 위해 속물이 되기로 마음먹은 양순호는 출세의 기회가 걸린 사건의 변호사로 지목되자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지우를 이용해 증인으로 세우려 한다. 하지만 양순호는 계속해서 지우를 찾아가지만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다. 그러던 중 양순호는 해당 재판 검사인 희중(이규형 분)이 지우와 친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폐아 동생을 둔 당사자로서 지우가 상처받지 않게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검사에게 양순호는 어떻게 하면 되냐 묻게 된다. 해당 검사는 “자폐인들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어요. 나가기 힘든 사람과 소통하고 싶으면 당신이 거기로 들어가면 되잖아요”라고 답한다. 양순호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지우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에게 폭행을 당하는 지우를 본 양순호는 그 속에서 지우를 구해 주게 된다. 지우는 그런 양순호에게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질문하며 양순호의 마음을 흔든다. 그런 양순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지우는 어머니에게 “엄마, 나는 변호사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자폐니까, 하지만 증인을 할 수 있어”라며 증인 출석을 다짐한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하면서 양순호는 사회적 출세를 위한 길을 선택할지 진실에 맞서는 길을 선택할지의 기로에 서서 결국 ‘출세’를 택한다. 이어지는 재판 속에서 양순호는 지우에게 ‘정신병’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지우에게 정신적 상처를 입히게 된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날 이후 지우는 계속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정신병자입니까?”라고 묻는다. 양순호는 사과하기 위해 찾아가지만 지우의 엄마로부터 “착한 척, 위해 주는 척하면서 앞에서 대놓고 망신 주는 게 변호사입니까?”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양순호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아버지는 한마디 말을 건넨다. “나는 네가 변호사가 돼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을 때가 너무 기뻤다. 변호사가 된다는 것보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말에 우리 아들이 잘 컸다고 생각이 들었어”. 양순호는 이 한마디를 통해 초심을 되찾고 자신의 이익이 아닌 변호사로 지우를 위해 진실에 맞서기를 결심한다. 그렇게 지우에게 “앞으로 변호사는 더 이상 못 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가지만은 확실해진 게 있어. 내겐 네가 필요하다는 것이야”라고 말하며 이어지는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진다. 이후 이미 한번 양순호에게 상처를 입은 지우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알아봐 준 양순호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양순호가 울먹이는 것으로 영화의 끝을 맺는다.

 

편견과 실리에 억눌린 정의

정의를 무시하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정의를 위해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영화에서 나온 대사들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주고 소통의 방법을 알려준다. 현재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삶 속에서 되새겨 봐야 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람을 무시하고 상처를 준 그들과 우리는 과연 달랐을까? 우리는 진실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일로 다가왔을 땐 편견 속에 사로잡혀 실리를 선택하고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정의 구현을 말하지만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일까? 정의는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양심과 같다. 정의는 결코 억지 눈물을 자아내고자 하는 싸구려 동정 같은 것이 아니다. 사전 속 한 페이지로 말하는 ‘정의’보다 현실 속 ‘정의’가 갖는 의미는 무한하기에 우리는 실리보다 정의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실리를 택하기 전 정의를 버리지 않은 거울 속의 나를 당당히 쳐다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윤예진 기자  yejin@dongg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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