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나 삶에서 시작하는 사회정치적 상상력

“각자의 눈높이가 다르지만 자신만의 사회정치적 상상력이 시대정신" 동대신문l승인2018.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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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광규 시인 본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나는 4년여 공장에 다니다가 스물넷에 대학에 입학했다. 두 해 동안은 공장에 다니면서 학업을 했다. 공장을 알고 학교를 아는 학생이었다. 관념으로 의식화 된 학생은 아니었다. 대학 3학년 휴학 중에 문단에 등단하였다. 스물일곱 살이었다. 등단 전까지 자취방에서 나름대로 시쓰기에 엄청 몰입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도서관에서 1950년 이전 신문 영인본을 뒤져 학예란을 읽고, 당시에 금서였던 정지용 전집을 구해 또박또박 필사하고, 복사해서 제본한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4학년 말에는 첫 시집을 냈다. ‘대학일기’였다. 첫 시집이 스물여덟에 나왔으니 늦은 나이는 아니었다. 당시 첫 시집을 낸 시인 가운데 최연소였다. 지금 돌아보면 더 많이 생각을 익히고 표현을 다듬어 시집을 냈으면 하는 후회가 있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시를 공부하면서 시를 통해 나름대로 시대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988년 이전에는 월북한 시인들의 시를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등단 이전에 학교 도서관에 보관중인 옛 영인본 신문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김태준의 산문을 만났다.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라의 왕릉은 민중들이 쌓았다는 것이며, 화랑제도라는 것이 신라 지배계급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제도라고 하였다. 이 글을 읽고 역사와 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와 ‘조선한문학사’를 쓴 국어학자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총살을 당했다. 명륜학원(성균관대 전신)과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 전신)에서 조선문학을 강의하였는데, 일제가 한글사용을 금지하였음에도 한글로 강의를 계속하여 견책 감봉 등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그의 제자인 안동출신 이응준에게 구해 전형필을 통해 ‘훈민정음’이 귀중한 민족의 유산임을 세상에 알리고 잘 보관하게 하였다. 책을 전형필에게 넘겨주면서 받은 수고비 1천원과 책값 1만원은 경성콤그룹 지하운동자금 썼을 것이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배워본 적이 없는 정지용의 시를 읽고 좋아서, 이게 누구냐고 물었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1988년 이전에는 월북한 시인이라고 해서 대학에서는 정지용 이름조차 공식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용이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내용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시나 글도 아닌데 접근을 못하게 하는 것은 권력의 작란 말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를 공부하면서 사회정치적 눈을 뜨게 되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광주학살을 덮기 위해 ‘국풍81’을 기획해서 대중문화를 통해 비판적으로 대중문화와 대학문화를 희석시키려 하였다. 어느 글에서 보니 KBS가 5일 동안 1천만이나 대중을 동원시켰다고 한다. 이에 양심적 지식인과 대학생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 민중문화운동이었다. 이 문화운동은 87년 민주항쟁으로 16~17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역사의 현장에 시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현재의 20대가 가져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모른다. 고민의 차이와 삶을 보는 눈높이가 다를 것이다. 다만, 자기 전공이나 삶을 통해서 시대에 눈뜨고, 거기서 시작하는 사회정치적 상상력만이 가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시대정신일 것이다. 통일문제, 청년노동, 양극화, 양성평등 등 어느 것이어도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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