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시네마- 네버 렛미고(Never Let Me Go, 2011)

나를 보내지 마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
동대신문l승인2020.06.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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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년을 넘게 되었다’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면서 1987년 헤일샴 학교의 교정이 화면 가득 눈에 들어온다. 그곳은 1967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기숙학교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루시 선생님은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너희들 중 아무도 미국에는 가지 못 할거야. 슈퍼에서 일하지도 않겠지. 너희들도 어른이 되겠지. 하지만 잠시 동안 만이지. 늙기 전에. 중년이 되기 전에 너희는 중요한 장기들을 기증하게 될 거야. 너희들은 그걸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너희들은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해”라고 말한다.

  헤일샴 학생들의 다소 남루한 교복차림과 낡은 학교 시설을 보면서 1978년도의 영국 기숙학교는 요즘처럼 부유층 아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헤일샴 학생들의 정체성에 관한 루시 선생님의 설명을 듣게 되면서 충격과 공포를 느낀다. 이제 막 청소년기로 업어들려는 11살짜리 어린 아이들, 같이 운동도 하고 마음에 드는 남학생 한 명을 두고 두 여자아이들의 묘한 심리적 갈등을 빚기도 하는 이 아이들이 복제 인간들이란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 캐시는 이름만 있고 성은 그냥 알파벳 H인 ‘캐시 H’인 것이다. 에밀리 교장이 조회시간에 유독 건강관리에 유의하라고 하면서 담배는 절대 피우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것이 결국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후일 이들을 장기 이식용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인간의 100세 수명이란 결국 복제인간의 ‘휴머니즘적 사육’과 이를 통한 장기 이식에 의해 실현되는 기획인가? 독일철학자 피터 슬로터다이크는 이전까지 인간의 친구로서 자신을 드러내 보였던 성직자와 교사들이 사실은 학교의 가면을 쓰고 인간을 길들이는 기획을 은밀하게 추구하며 사육을 독점해 온 점을 설파하고 있다. 유전공학이 발전한 오늘날 미래의 인간공학이 새로운 형질설계로 나아가기 위해 복제 인간을 사육하는 헤일샴 학교가 슬로터다이크가 지적한 휴머니즘의 가면을 쓴 인간 사육장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공감각적인 연민의 감정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도 결국은 사라지고 죽음을 맞데 될 것이라는 준엄한 진리와 대면할 때, 그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도 더욱 강렬해진다. 헤일샴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18세가 되는 1985년 그곳을 떠나 장기 기증을 하기 직전까지 일시적으로 얼마간의 자유가 허용되는 성인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코티지로 가게 된다. 거기서 그들은 성숙한 남녀 간의 사랑도 하게 되며 사랑에 빠진 이들은 그들의 기증 시기를 늦추어 보려는 시도도 해보지만 자신들의 숙명에 대해 결코 적극적인 저항은 하지 않는다. 복제 인간들은 ‘원본’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해 자신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 죽기 전까지 몇 차례 이어지는 장기 기증용 수술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된 캐시와 토미가 둘 만의 시간을 더 갖기 위해 자신들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애틋한 과정을 보면서 생명에 대한 윤리적 관점을 재고하게 된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예술적 은우와 현존재로서 우리들의 삶이 영화 속 그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게 한다. 영화 ‘네버 렛미고’는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며 예언적이다. 그래서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해결책은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고민하게 한다. 엔딩 자막이 내린 후에도 장기 기증 연기의 희망이 좌절되었을 대 토미가 한밤중 도로위에서 절규하며 울부짖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미혜교수
파라미타칼리지 외국어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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