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 CULPA

동대신문l승인2020.05.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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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 뇌인지과학과 및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과 정준모 교수

  출근길 시내버스 안, 손 세정제가 마련되어 있다. 캠퍼스에 들어서자 조용한 봄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스크를 살짝 들면 코끝에 벌써 여름이 묻는다. 서둘러 다시 마스크 온(on), 그리고 과학관 건물로 향한다.

 

  1937년 호흡기 질환에 걸린 닭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의 모습이 왕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코로나>라는 이름을 얻은 양성/외가닥 RNA 바이러스! 이 RNA 바이러스의 신종 SARS-CoV-2 출현으로 인해, 지난 4개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500여만 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33만명 이상이 사망하였다(www.worldometers.info): 치사율 6.6%. 2003년과 2012년에 발병했던 SARS(9.4%)나 MERS(36.1%) 코로나에 비하면 치사율이 높지 않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숙주 갈아타기에 성공한 것일까? 숙주가 죽으면 기생 바이러스 또한 끝이다. 그런 면에서 SARS-CoV-2는 이전 코로나 형제들보다 스마트해 보인다. 치사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빠르게” 전파한다. 해서 감염자의 수가 이전 코로나 질환에 비해 엄청 많고, 특정 연령대 및 기저질환자의 사망률이 높다 보니 감염사망자 또한 SARS나 MERS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특히, 보이지 않게 다가와 물어뜯는 것 같은 느낌의 무증상 감염으로 인해 공포까지 곁들여져, 격리 수준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수로 다가왔고 이는 기존 일상생활 패턴의 변화를 초래했다. 광장의 사라짐, 곧 만남의 단절이다.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되어왔던 ‘거대 도시화’는 만남의 빈도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인구밀도를 높여 오던 ‘거리 좁히기’의 부산물이었고, 이런 거대 도시 간 인적 및 물적 교류 확산을 통해 도시 간 네트워크의 가치사슬을 구성하여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명목 하에 공유해왔다. SARS-CoV-2는 이런 사회적 진행 방향에 일단 쐐기를 박는다: 모이지 마라,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기존 질서나 가치에 대한 변화 요구는 불안감을 일으킨다. SARS-CoV-2가 야기한 공포와 불안감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공포와 불안이 바로 생존과 성장의 밑거름이다. 예를 들면, 쥐의 뇌에서 공포감을 담당하고 있는 편도체라는 영역을 제거하면, 그 쥐는 천적 앞에서도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려움을 통해 이렇게 살아 남았다.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하는 끔찍한 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그 주어진 상황의 의미를 찾아 합리적으로 재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스트레스를 급하고 격하게 해소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우리 역사는 잘 보여준다: 희생양을 찾아 심적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일례를 들면,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는 쥐벼룩에 붙어살던 박테리아인데,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지1이 이 세균에 의해 사망했다. 당시 흑사병이 세균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유럽인들은 유태인과 나병환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여기 저기에서 희생양을 찾는다. 의과학계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SARS-CoV-2 최초발생지에 대해 거의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질병 발생의 책임을 묻는 것 또한 그런 희생양 찾기의 하나로 보인다. 물론 우한 지역에서 이 질병의 폭발적 발병이 시작된 것으로 현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SARS-CoV-2가 기원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 진행되고 있는 역학조사 결과에 선행해서, 사적 견해를 토대로 특정 대상에 대한 책임론을 공론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저 신판 희생양 찾기에 불과하다.

  스트레스의 요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 대상에서 찾아 해소하려고 하는 이 오래된 습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불교에서는 나와 남을 나누어 보는 뿌리 깊은 습성이 번뇌의 원인이자 결과라 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몸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죄의 근원이라 한다.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소리요, 같은 것 같지만 다른 말이다. 불현듯 어느 사찰 마루밑 섬돌 기둥에서 읽었던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글귀와 더불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 옵니다’라는 미사 중 고백기도 문구가 떠오른다. “내 탓이오 (mea culpa)”라는 것은 여전히 ‘나와 남을 나누어 보는 것’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만, ‘희생양 찾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 분별 세계에서의 최소 도구는 되겠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이 SARS-CoV-2의 희생양을 찾고 있다고 나 자신이 투덜거리고 있다. 희생양 찾기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자, 이제 SARS-CoV-2 희생양 같은 바깥 생각에 머물 것이 아니라, 바로 안에서 mea culpa를 실천해야겠다: 가르친 것을 학생이 잘 모르면, 잘못 가르친 교수 탓이니 “미안함”을 잊지 말자!

 

  건물 안 고요한 복도 끝, 연구실 앞에서 마스크 오프(off). 문을 열고 낯익은 책상에 시선을 둔다. 분무기로 알코올을 살짝 손에 뿌린다. 이렇게 또 하루가 열렸다. 코비드-19 바이러스, SARS-CoV-2 덕분이다. 그런데, SARS-CoV-2에 의해 쐐기 박힌 기존 사회의 진행 방향은 향후 어떻게 될까?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바꿀 것인가? 뿌리 깊은 습성, ‘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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