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은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로 가장한 자신만의 독백, 함께 나누는 대화의 필요성 티벳대장경역경원 정상교 전임 연구원l승인2018.11.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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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로 가장한 자신만의 독백, 함께 나누는 대화의 필요성

 

▲ 티벳대장경역경원

   정상교 전임 연구원

한국에서 ‘선배’ 혹은 ‘상사’라 불리는 ‘남자 사람(이하, 남자 사람 선배로 통칭)’과 회식이라 불리는 ‘술자리’를 하게 되면 반드시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 정치로 시작 되는 그 장대한 서사시는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의 국정 전반까지 쭉 한번 훑고 지나가게 된다. 물론 이 서사시는 태평양 건너 트럼프의 머릿속까지 정밀 스캔하여 국제 정치와 세계 평화에 대한 훈수까지 두고 나서야 끝을 맺게 된다. 그즈음 불판의 삼겹살은 식어가고 먹음직스럽던 음식들은 제 빛깔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국내외 정치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 쯤, 이때다 싶어 음식 하나를 입안으로 가지고 가 보는데 여기서 남자 사람 선배는 정치 이야기 보다 더 무서운 “원스 어폰어 타임” 으로 시작되는 “내가 너 때는 말이야…” 의 무시무시한 네버 엔딩, 네버 인터레스팅, 안물안궁의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그의 유년기와 사회 초년병 시절의 이야기, 심한 경우 그의 첫사랑 이야기까지가 곁들여지면, 이제 삼겹살은 완전히 식어 기름이 뒤엉켜 붙고, 음식은 제 맛을 잃어간다. 내 마음속 식욕도 삼겹살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사라져 간다. 가엾은 후배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그저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다. 그리고 제발 2차 없이 여기서 끝나길 기도드릴 뿐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후배들은 남자 사람 선배를 ‘꼰대’라 칭하는 메세지를 공유하면서 빼앗긴 대화의 시간에 대한 한풀이를 대신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전에,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념적이라 추상적인 것을 좋아하고, 일본인들은 직물적(直物的)이라 구체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일반론이 모든 한국인과 일본인을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인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나는 이 규정이 참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일본 유학 시절 학과 교수님들이나 선후배들과 가졌던 회식 혹은 학회 참석한 학자들과 가졌던 회식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소위 거대담론-가 (길게) 나오는 건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회식 자리에는 늘 ‘나’와 ‘너’의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의 공통분모가 도출되었다. 구체적으로 내가 공부하는 분야의 이야기, 여기에 관심을 갖는 상대의 물음, 그리고 다시 나의 물음, 혹은 나의 일상의 이야기가 회식의 주된 테마였다. 그래서 트럼프나 아베 총리가 우리의 소중한 회식자리에 등장해 맛있는 맥주 맛을 빼앗아 가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술을 강요하지 않기에 그들은 주스를 마시면서도 유쾌해 했다. 여기에 더해 그 회식에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었다. 적당히 마시다가 각자 갈 시간에 인사하고 가면 그만이었다.
그럼 다시, 왜 우리의 ‘남자 사람 선배’와의 회식이 재미없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는 나와 너가 사라진 ‘세계 평화’를 향한 공허한 설명문만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 평화’가 문제가 아니라 쌍방의 참여를 박탈하는 일방적인 설명을 대화라 믿는, 그 역시 그렇게 교육받아온 ‘남자 사람 선배’의 무서운 착각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오늘도 회식에 참여한다면, 그리고 내가 ‘남자사람선배’의 역할을 맡게 된다면, 늘 생각해주길 바란다. 나는 지금 설명을 대화라 착각하는 건 아닌지...


티벳대장경역경원 정상교 전임 연구원  press@dongg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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