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장군과 천관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동대신문l승인2015.09.07 17:1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김유신은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해왕의 중손이었다. 구해왕은 신라 법흥왕 때 아들 셋을 데리고 신라에 항복하여 진골에 편입 되었다.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은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장군이였으며, 부친은 김무력의 장남 김서현이고 모친은 진평왕의 동생 숙흘종의 따님 만명부인 이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서현이 길에서 만명을 보고 눈짓으로 꾀어 서로 야합하였는데, 서현이 만노군 태수로 갈 때 데려가려 했으나, 숙흘종은 분노하여 딸을 별채에 가두고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 벼락이 쳐서 지키던 사람들이 놀라서 정신을 잃은 틈을 타서 만명은 창문으로 도망쳐 서현과 함께 떠났다. 그래서 김유신은 진평왕 17년 지금의 충북 진천인 만노군에서 태어났다.

김유신에 대한 기록은 주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대장군의 모습이지만, 다른 한편 천관녀와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김유신이 천관녀와 이루지 못한 사랑은, 신분의 한계에서 오는 문제가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은 한평생 79세까지 김유신 장군의 가슴 속에 그늘로 남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유신과 천관녀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천년도 훨씬 넘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김유신은 가족을 떠나 서라벌에 온 후, 같은 금관가야 출신인 천관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를 눈치 챈 어머니로부터 호된 야단을 맞고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말을 타고 눈을 감은 채 앞날을 걱정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갑자기 말이 멈추어 서기에 눈을 떠보았더니 천관녀의 집이었다. 그 날도 당연히 천관녀의 집으로 가는 줄 알고 찾아갔던 애마는 김유신의 칼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김유신의 효성과 결단력을 높이 평가하는 이도 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김유신을 반기는 천관녀의 애틋한 마음도 모른채 말의 목을 치고 돌아서는 모습을 지켜보던 천관녀의 심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죽 했으면 ‘천관원사’라는 노래가 ‘가시리’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전하고 있겠느냐 말이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설운 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 오소서.”

천관녀는 흔히 말하는 기생이나 술집여인이 아니고, 가야의 귀족으로 태종 무열왕의 휘하에 있던 천존장군의 누나라고 전한다. 김유신이 천관녀와 더욱 가까워진 것도 같은 가야 출신이라는데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한다. 천관녀는 그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평범한 규수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하급 관리에 속하던 여사제를 천관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신라 임금의 친동생 숙흘종의 따님인 만명부인이 굳이 김유신과 천관녀가 사귀는 것을 막았던 것도, 당시 사회풍조가 신라로 귀화한 가야계 출신들에 대한 편견이 있음을 가야계 김서현과 야합한 본인의 체험을 통해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낭도를 거느렸으며, 16세에 천관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만명부인의 엄한 훈계를 듣고 17세에 단석산에 들어가 웅거하던 중, 신인을 만나 무예로 심신수련에 전념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김유신이 35세 때, 진평왕은 고구려 군의 침입을 맞아 김춘추의 부친 김용춘과 김유신의 부친 김서현 등 용장들로 하여금 지금의 충북 청주인 낭비성을 치게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 그때 김유신이 젊은 기백으로 낭비성을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키면서 크게 명성을 떨친 후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삼국통일의 원훈이 되었다.

주색에 빠져 폐위된 제25대 진지왕의 아들이요 김춘추의 아버지인 김용춘은 왕이 될 수 없었다. 그 가문은 가야국 왕손 김유신과 같은 형편이 되어 심정적으로 상통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김유신의 지지와 추대로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에 즉위한 것이, 그의 나이 52세였고, 김유신의 나이 60세 때이며, 그 다음 해에 김유신은 김춘추의 왕녀요 자신의 생질녀인 지소와 혼인하여 5남 4녀를 두었다. 김유신은 천관녀와 헤어진 후 독신으로 살다가 60세가 넘어서야 김춘추의 딸 지소와 혼인한 것이다. 참으로 긴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김유신에게는 본인도 모르던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기벌포 전투의 영웅 김시득 장군이었다. 이 사실은 천관녀의 동생인 천존 장군과 진지왕의 서자인 비형랑만이 알고 있었다. 천존은 자기 누나를 버린 김유신 장군이 오릉 동쪽 천관의 집터에 천관사를 짓는 것을 보고 , 자기 누나를 그리는 마음이 너무나 애틋함을 알고, 감동을 받아 천관이 낳아서 다른 가문에 입양시켰던 김시득에 대해 알려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해서 김시득과 서로 부자로 상봉하게 되었지만 김유신 장군은 그리 오래지나지 않아 노환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최호택
평생교육원 강사


동대신문  press@dongguk.ac.kr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신문사소개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8066 경상북도 경주시 동대로 123 (석장동,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  대표전화 : 054)770-2057~8  |  팩스 : 054)770-205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민영
Copyright © 2021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