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密敎)를 위한 변명

동대신문l승인2015.06.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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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즈음, 인도유학 시절의 일이다.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고 인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비구니스님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다. 스님은 뿌네대학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였고 나는 다람살라에서 티벳불교를 공부한다고 했다. 그러자 곧 이어지는 스님의 말 “그거 밀교 무당불교 아니요? 아니, 왜 그런 불교를 배워요?”

티벳불교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밀교이다. 티벳불교를 밀교라고 하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소작 탄트라부터 무상요가 탄트라에 이르는 4종 탄트라의 모든 가르침과 법맥이 살아있기 때문에 반은 맞으며 그렇다고 밀교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반은 틀린 것이다. 근본적으로 현교(顯敎)를 배제한 밀교만이 존재할 수는 없다. 밀교라는 최상승의 가르침이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바탕이 되는 현교의 모든 가르침이 온전히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밀교(密敎)는 말 그대로 비밀스런 가르침이다. 겔룩파의 개산조인 쫑카파 대사의 『밀종도차제론(密宗道次第論)』에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밀교의 법을 받아서 수행을 하는 자는 그 일체의 수행 행위를 숨기고 비밀에 부쳐야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밀교(密敎)라 한다. 또한 밀법을 설하는 자는, 그릇이 아닌 자에 대해서 밀법의 대상이 아닌 까닭에 그들에게 결코 설하지 않고 비밀로 하기 때문에 밀교라 한다.” 이와 같이 밀교는 현교(顯敎)와 구분되고 가르침을 받는 대상(法器)을 차별하여 자격을 갖춘 사람 이외의 일반에게는 비밀로 해야 하는 가르침인 것이다. 비밀로 해야 하는 이유는 가르침의 난이도와 그에 따른 위험성 때문인데 이에 대한 비유로써 밀교 수행은 마치 배고픈 호랑이에게 장난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굶주린 호랑이에게 여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듯이 밀교수행도 여차하면 삼악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어렵고 위험하다는 밀교의 가르침이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성불(成佛)에 소요되는 시간과 수고로움 때문인데 보편적으로 현교에서 성불에 소요되는 시간이 ‘삼대아승지겁’인데 비해 밀교에서는 삼생, 짧게는 한 생애만으로 성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교를 수행하고자 하는 보살은 자신의 성불을 앞당길수록 자신과 인연있는 중생의 제도도 그만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에 중생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지극한 자비심으로 인해 밀교수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밀교의 가르침과 수행은 이러한 보살들을 위한 것이며 중생구제에 대한 열렬한 마음이 있을 때만이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복잡하고 다양한 밀교의식과 그 속에서 보이는 형형색색의 이미지를 보고 밀교를 무당불교라고 하고 어떤 이는 다양한 불보살의 형상이 힌두교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외도라고 한다. 한술 더 떠 티벳불교를 남녀교합을 강조하는 타락의 극치라고까지 한다. 어떠한 것을 판단할 때 지엽적인 부분에서 공통점이나 유사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같은 것으로 싸잡아 보는 것은 잘못이다. 기맥타통이나 기(氣)의 운행, 차크라의 개발은 밀교뿐만 아니라 힌두교나 중국 도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사성을 가지고 이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도와 불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아사상이다. 외도의 밀교와 불교의 밀교가 겉으로 보기에 유사할지 모르지만 불교의 밀교는 근원적으로 무아의 지혜와 자비심을 바탕으로 모든 수행이 이루어진다. 앞서 언급한 밀교의 법기가 갖춰야 할 자격 가운데 가장 핵심적 요소 역시 보리심(菩提心)과 공성(空性)의 지혜이다.

티벳불교는 성공한 불교이다. 물론 성공이란 표현이 불교에 걸맞는 표현이 아닐지 모르지만 티벳불교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다르마센터(Dharma Center)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 반농담조로 달라이라마께서 이런 현상을 중국음식점에 비유하신 적이 있다. 세계 어딜 가도 중국음식점이 있는 것은 그만큼 중국음식이 많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인데 세계 곳곳에 다수의 티벳불교 센터가 존재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라는 것이다. 물론 수적으로 많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현대 물질문명의 정점을 경험하고 다양한 종교를 접해온 서구의 티벳불교에 대한 열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티벳불교의 성공은 유례없는 일이며 이것은 불교포교 역사에서 다른 불교전통에선 해내지 못한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이다. 유럽의 성당은 신도가 없어 동양에서 온 티벳승려들에게 사원 용도로 성당을 내주고 있으며 프랑스인의 35%이상이 티벳불교 신자이다. 자국 출신의 교황까지 배출한 독일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달라이라마가 십수년째 부동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과 북남미는 물론이고 캐나다, 대만, 동남아시아에서 티벳고승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티벳불교 센터가 곳곳마다 생겨났다. 티벳불교가 합리성이 결여되고 설득력이 없으며 남녀교합을 강조하는 타락 불교였다면 과연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박은정 티벳장경역경원
前 전임연구원
「현대티벳어」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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