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군, 이대로 괜찮은 겐가?

문화기획 - 한국문학의 현황 박선영 기자l승인2007.10.2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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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공격력의 일본 문학? 소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침투는 은근하고도 거침없었다. 일본소설은 1990년대 후반에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에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선풍적인 인기로 한국을 점령하고 있다. 대한출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일본문학은 509종, 153만 부로써 국내 번역문학 시장의 32%를 차지하며 번역문학중 1위를 기록했다. 외국소설 중의 강자일 뿐만 아니라 일본 소설의 시장점유율이 31%를 기록해 23%인 한국소설을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다(교보문고 통계). 수치만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나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같은 일본소설을 본 사람이 한국의 대표적인 기성 작가인 박완서의 단편소설집을 읽은 사람보다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본소설들이 왜 인기가 있는 걸까? 우선 그 소재의 다양함을 들 수 있다. 작가 층이 두터워 각자 개성 있는 색채가 그리는 일상은 감성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준다. 뿐만 아니라 초현실적 색채를 덧씌운 이국적인 소설부터 미스터리 공포물, 사회 풍자적인 유머에 자극적인 소재까지 - 일본 문학의 장르는 충무로에서 영화화하기 위한 판권전쟁을 벌일 정도로 신선하다.

 또한 오락적으로도 흥미가 있다. ‘독서처럼 값싸고 영속적인 쾌락은 없다’는 몽키스키외의 말처럼 인터넷 문화가 만연한 풍경에 익숙해진 젊은 독자들은 우선적으로 즐거움을 선택하고, 가벼운 일본문학을 쉽게 접하게 된다. 그 안에는 역사와 민족주의도 없고, 독자를 계몽하려고 사회적인 의식을 심어주려는 노력도 없다. 그저 쉬운 문체를 통해 감성으로 이뤄진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통쾌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경쟁관계인 한국문학이 독자와 괴리되어 있다는 현실이다. 평론가들이 대부분 호평하는 소설을 보면 문학성과 형식성이 어려운 단어로 ‘멋지게’ 표현되어 있어 대중성이 있는 소설에 야박하기 그지 없다. 한 예로 100쇄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인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에도 문단의 싸늘한 비평을 받고 있어 독자와 한국문학의 거리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틈새를 비집고 온 일본소설은 한국문학의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되고 한국문학에서 떨어져나간 독자들은 일본소설에 탐닉하게 되었다.

한국소설의 반격이 시작된다!

 독자가 없는 글은 아무리 훌륭해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문학 자체가 독자에게 읽혀지고 작가의 표현이 납득할 수 있어야 접근을 허락하는 고지식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없는 한국소설 역시 한국문학으로 불릴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안고 있다. 독자를 잃은 한국소설,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일까?
 현재 한국소설의 주류는 기성세대의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개인의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사회는 개인을 휘둘러 오고 개인은 감당해야만 한다. 이런 주제는 어렵고 독자들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만의 세계’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협회)가 마지막에 이념을 남기고 예술을 상실한 채 해산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 주제로만 매진해 있어 독자들의 흥미를 잃은 한국소설에는 신인들의 새로운 감각이 필요하다. 그것이 파격적인 주제를 개인적 관점에서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신인들이 공감을 원했던 독자들과 편히 만날 수 있다면 독자들에게 접근성을 높여 줄 수 있다. 이와 함께 대세론에 묻혀 빛이 바랜 작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진다면 독자는 한국소설의 다양성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독자층을 탄탄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개성적인 작가들의 다양함이 독자들을 끌어왔다면, 그에 힘을 보태 주어야 하는 것은 출판사이다. (미스터리 작가인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일 년에 다섯 권을 번역할 만큼) ‘돈이 되는’ 일본소설이라면 검증 없이 찍어내는 풍조는 별이 되기 전의 신진작가들을 암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비슷한 소설의 대량생산은 한국독자들의 감성을 소모시키고 문학의 다양성을 박탈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태에 출판업계는 ‘오늘의 작가상’(민음사)이나 ‘문학동네신인상’(문학동네) 등의 작가발굴을 통해 한국문학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소모적인 피를 수혈 받는 행위를 지양해야 한다.

‘착한’ 한국문학을 만나고 싶다

 문학은 언어를 표현 매체로 하는 소통의 창구이다. 이 소통은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부터 개인과 세계의 만남일 수도 있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접촉면일 수도 있다. 이런 문학 중 소설은 ‘생활의 예술’이라고 불릴 만큼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대중들에게 가장 지지받고 있는 문학의 형태이다. 이런 소설이 독자들의 외면을 받고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설이 가지는 현대적 의미는 쾌락과 공감으로, 독자를 배려하는 소설이 주류가 된다면 독자의 발길은 자연스레 잦아들게 될 것이다.
 한국소설이시여, 당신을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으로서 말하나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박선영 기자  tjsdud026@dongg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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