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인류의 지성이 창조해낸 최고의 걸작

장영길 교수l승인2007.10.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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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학의 측면에서 세계의 문자를 살펴보면, 중국의 한자로 대표되는 단어문자가 있고, 일본의 가나문자와 같은 음절문자가 있는가 하면, 오늘날 서구제어의 표기문자로 전용되고 있는 로마문자나 한글과 같은 음소문자도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문자 가운데서도 한글처럼 음운자질체계가 기호화되어 자소체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흔히 한글을 ‘일 음소 일 문자’의 발음기호와 같은 ‘음소문자’라고 한다. 그런데 영국의 언어학자 G. Sampson은 한술 더 떠서 한글을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featural writing system)’라고 명명했다. 이는 한글의 문자기호학적인 우수성을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거니와, 오늘날 세계의 많은 언어학자들이 이처럼 한글의 우수성을 이구동성으로 예찬하고 있다.

 <훈민정음해례>에 나타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한글의 자소체계에 반영된 음운자질체계에 대해, 치조음서열의 한글 자음자소를 예로 살펴보면, 가장 여린 소리인 [ㄴ]을 기본자소로 하고, 거기에 소리의 세기에 따라 가로획을 하나씩 더한 가획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제자된 치조음서열의 글자들인 [ㄴ,ㄷ,ㅌ,]을 보면, 기본자인 [ㄴ]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음운자질의 표시가 가로획을 하나씩 더해가는 것으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글의 자음자소는 서열별로 여린 소리인 기본 자소에서 음운자질이 센 소리인 자소로 나아갈수록 가로획이 하나씩 더해지므로 점점 더 복잡한 자소꼴을 띤다. 그래서 한글의 자음자소꼴 속에는 이미 음운자질을 암시하는 기호가 들어가 있는 것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한글 모음자소는 천ㆍ지ㆍ인(天地人)을 상징한 [ㆍ, ㅡ, ㅣ] 세 자로 현대 한국어의 단모음 10개와 이중모음 11개를 모두 조합ㆍ생성해 낼 수 있는 제자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예는 세계 어느 문자 체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글만의 독창성이며, 그래서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전대미문의 위대한 걸작이 되었다.

 한편, 한글은 애초에 음소문자로 창제되었지만, 표기법상으로는 서구어처럼 풀어쓰기를 하지 않고 음절단위로 모아쓰기를 함으로써 다시 한 번 그 우수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즉 음절단위로 모아쓰기 함으로써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모두 가능해졌고, 풀어쓰기에 비해 지면을 절약할 수 있으며, 또한 독서의 능력을 엄청나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해례;합자해>의 초ㆍ중ㆍ종성의 조합 원리에 따라 표기된 한글은 그 미학적 우수성도 확보하게 되었다.한글은 창제자와 창제목적 및 제자원리와 운용방법 그리고 창제 연대가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일천한 문자이다. 그런 까닭으로 한글은 다행히 기존의 단어문자와 음절문자 그리고 음소문자의 장점을 모두 모으고, 거기에 자질문자의 장점을 더해 지금까지 세계 어느 문자도 감히 넘보지 못했던 위대한 걸작 ‘자질문자’로 탄생할 수 있었다. 한때, 음소문자로 창제된 한글이 표기상 음절문자처럼 음절단위로 모아쓰기 함으로써 한글 기계화(타자화)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글은 문자생활의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여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컴퓨터나 이동통신 등에서 발휘되는 한글의 위력은 이미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경탄한 바 있거니와, 실제로 컴퓨터의 한글자판 배열을 보면, 자음자소와 모음자소의 개수가 19대 21로 황금분할이다. 그래서 자판의 왼쪽에는 자음자소 19 개의 키가 포진하고, 오른쪽에는 모음자소 21 개를 조합해 낼 수 있는 키가 포진해 있다. 그리고 우리말은 음절구조가 거의 ‘자음+모음+자음+모음--(CVCV--)’의 구조로 연결되기 때문에 두 손의 기능부담량이 반반씩이다.

이러한 자판구조는 모음자소가 다섯개(a,i,u,e,o)밖에 없는 로마자를 모태로 하는 서구문자 자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이동통신의 협소한 문자키 공간에서 한글의 모음자소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ㆍ, ㅡ, ㅣ’ 3 개로 21 개의 모음자소를 모두 생성해 낼 수 있는바,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발명한 모음자소 제자 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참으로 전자강국으로서의 한국을 이끌어낸 한글과 컴퓨터의 궁합은 말 그대로 찰떡궁합이다. 문자 교육학자들은 문자의 우수성을 흔히 문맹률과 대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일례로 고유문자가 없는 터키인들은 한 때 아랍문자를 빌려와서 자국의 언어를 표기했다. 그러나 그 난해성 때문에 의무교육을 마친 청소년들의 문맹률이 70%에 육박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아랍문자를 버리고 로마문자를 빌려와 문자생활을 개량하였는데 그 후 문맹률이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의무교육을 마친 청소년들의 문맹률이 제로라고 한다. 이것은 곧 한글의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사실이 된다. 그래서 최근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상을 제정하고 그 해에 세계적으로 문맹퇴치에 공적이 큰 단체나 개인에게 이 상을 해마다 수여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조상들이 남겨준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을 받아쓰기만 하고 개량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는 소홀한 듯하다.

특히 한글의 자소꼴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글의 나이가 600여 살이 다 되어가지만 그 동안 한글의 서체나 자소꼴의 개량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600여 년 전 창제 당시의 자소꼴이나 지금의 자소꼴이 그냥 그대로 인 것이다. 과연 G. Sampson이나 G. K. Ledyard가 말한 ‘인류지성이 창조해낸 최고의 걸작’이라든가, ‘문자기호학적인 사치를 다한 문자’라는 기절할 만한 극찬만큼이나 한글은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글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한 가지만 부언한다면, 한글의 된소리자소는 서열별로 예삿소리자소를 병서하여 만들었는데, 오늘날 이 글자를 타자해 보면, 글자의 획수가 너무 복잡하여 시각적인 문제 뿐 아니라 프린트 상의 문제도 야기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ㄲ,ㄸ,ㅃ,ㅆ,ㅉ] 등 된소리자소들은 그 자소꼴의 개량이 요구된다.앞으로 다양한 연구를 통해 한글이 보다 더 사용하기 편하고, 미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한 세계 제일의 문자로서의 면모를 일신해 가기를 기원해 본다.

장영길 교수
인문과학대 국어국문학과


장영길 교수  press@dongg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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