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이방인』

오영진 겸임교수l승인2007.10.2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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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 뫼르소는 옛 직장동료 여성과 해수욕을 즐기며 희극 영화를 보고 동침까지 한다. 본능적 욕구를 쫓는 무지각한 삶은 결국 순간적 충동에 의한 살인에까지 이른다. 법정에 선 그는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진술한다.

이처럼 무관심과 반사회성을 그려 충격을 준 『이방인』은 세계대전의 대량살육 앞에 인간의 합리성과 선함,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의 허구성이 드러난 배경에서 나왔다. 2차 대전 중에 출간된 이 소설에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뫼르소의 반응은 사회적 관습에 무관심하고 지금 주어진 삶을 즐기는 것, 침묵, 그리고 반항으로 나타난다. 계획된 범죄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끌어들이는 검사는 사회규범과 그 수호자인 합리적 사고를 대변한다. 가식적 언어를 동원해 자기를 변호할 의사가 없는 그의 비합리와 침묵은 도덕과 가치관이 사실은 자의적인 것이며, 이해타산을 위해 합리의 가면을 쓰고 벌이는 유희임을 역설적으로 폭로한다.

 반항인 뫼르소는 현실에 협력하거나 동참하지 않고 육체와 본능에 충실하며, 부조리의 참례자이자 집행자인 언어와 지식과 법과 종교에 따르지 않는다. 사형을 앞둔 그를 찾아와 죄를 참회하고 신의 품에 귀의하라는 부속사제에 대해 비록 부조리하지만 그의 삶에서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내세에 대한 거짓된 희망을 약속하는 신념은 하등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부조리한 삶에 있어 아무것도 확실하거나 중요한 것은 없으며, 모든 존재는 결국은 무로 돌아간다. 신도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인간을 구해 줄 수 없다. 이방인은 부조리를 의식하고 드러내는 자이다. 내세의 구원을 위해 현세를 부정하고 죽음과 같은 도덕적 삶을 살기를 거부한 그는 니체의 반기독교, 반도덕과 운명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신은 죽었고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방인』은 우리의 대답을 요구한다. 세상을 지배해 온 허상들, 감투와 제복의 우상들의 제단에 바쳐진 한 인간의 피. 서구인의 마음은 이방인의 절규에 뒤흔들렸다. 합리주의와 기독교적 사랑이 차별과 학대, 지배와 착취의 긴 그림자를 끌고 다녔던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그러나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반벙어리 어머니와 가난 속에서 자라난 카뮈는 이를 일찍이 알고 있었다.

『이방인』은 도덕적 우화가 아니라 소외의 기록이다. 그가 우리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타인이라는 점에 있다. 최소한의 자기방어, 해명의 몸짓, 독백의 한마디도 침묵에 묻어버리고, 사회가 씌워준 색안경을 통하지 않은 그의 관찰자적인 시선은 세상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까지도 타인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뿐 좀처럼 판단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그런 눈에 삶의 부조리함이 드러난다. 매일같이 매질을 해오던 개를 잃고 혼자 남은 살라마노 노인이 자기 방에서 흐느끼며 우는 장면에 보이는 고독과 소외가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된 지금 이방인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 속의 낯선 자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 긴 밤 뒤척이게 만든 카뮈의 『이방인』은 그래서 고전일 수밖에 없다. 고전이 혼란과 방황조차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오영진
인문과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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