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첨성대

동대신문 경주캠l승인2011.05.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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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가 만들어진 이후 기록된 유성의 떨어진 위치들이 모두 첨성대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첨성대가 완성된 후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의 수가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과 질적으로 정밀해졌다는 것도 알아냈다.
최근 첨성대 관련 연구를 통해 그 동안 첨성대가 상징적인 건물이라거나 제단일 것이라는 주장을 잠재우고 천문대였음을 확고히 하게 되었고 따라서 첨성대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것을 증명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천문대인 관천대의 상단 모습이 첨성대와 비슷한 것으로 봐서 관천대도 첨성대를 본 떠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즉위년부터 한참 동안 천문기록이 없다가 여왕이 죽던 해인 647년에 갑자기 천문기록이 많아진 것으로 봐서 첨성대의 완공 시기는 선덕여왕 말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첨성대가 천문대였다는 더욱 직접적이면서 확실한 증거는 신라가 첨성대가 만들어진 이후 기록한 다섯 군데 유성이 떨어진 위치들이다. [647년 2월 정월 한밤중(밤3경)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647년 7월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673년 2월 봄 정월에 큰 별이 황룡사와 재성 중간에 떨어졌다. 710년 2월 봄 정월에 천구가 삼랑사 북편에 떨어졌다. 768년 7월 여름 6월에 큰 별이 황룡사 남쪽에 떨어졌으며 지진동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
647년, 673년, 710년, 768년에 관측된 유성은 떨어진 위치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데 각각 월성, 황룡사와 월성 사이, 삼랑사 북쪽, 황룡사 남쪽이다. 이 유성 모두를 관측할 수 있으려면 유성들이 떨어진 위치들이 둘러싼 원의 영역 안에서만 가능한데 첨성대가 그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은 첨성대에서 이 유성들을 관측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특히 673년의 기록은 다른 유성 기록에 비해 떨어진 위치가 더 구체적인데 이는 유성이 떨어진 위치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관측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첨성대의 위치가 그곳에 가깝다는 점에서 첨성대에서 이들 유성을 관측했을 거라는 강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 수는 첨성대가 만들어진 후 무려 10배 이상 급격한 증가를 보인다. 이는 신라가 첨성대를 만들어 체계적인 천문관측을 했다는 첫 번째 증거라 할 수 있다.
첨성대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은 질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를 보인다. 혜성처럼 누구나 나타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천문현상은 상대적인 비율이 줄고, 대신 행성이 달 뒤로 숨는 현상이나 순간적인 유성의 출현 등 전문적인 천문학자들이 매일 밤 관측해야 얻을 수 있는 기록들이 많아졌다. 유성 기록의 경우 첨성대가 만들어진 이후부터는 나타나고 사라진 천구상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특징도 보인다. 첨성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100년당 평균 7건의 기록을 남긴 반면 첨성대가 만들어진 후부터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는 100년당 평균 33건의 천문관측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또한 첨성대가 만들어지기 전의 기록들은 주로 일식과 혜성 등 체계적인 관측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현상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첨성대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유성이나 행성 현상 등 전문적인 천문학자들에 의한 체계적인 관측이 필요한 현상의 기록이 더 많다는 특징도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연구본부 본부장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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